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영광스러운 선언 뒤에는, 그 형상이 파괴되고 오염된 비극적인 역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에서 '죄론(Hamartiology)'은 단순히 도덕적 결함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어긋남을 진단하는 학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어 가인과 셋으로 이어지는 인류 초기의 역사는 죄가 어떻게 실재화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1. 죄의 선행적 기원: 천사의 타락과 마귀의 존재
죄는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창조되기 전, 혹은 인류 역사의 여명기에 이미 영적 세계에서의 반역이 선행되었습니다.
1.1. "처음부터 범죄한 자"의 의미
요한일서 3장 8절은 "죄를 지은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처음부터'라는 표현은 두 가지 중의적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마귀의 존재 자체가 죄와 결부되어 있다는 존재론적 선언이며, 둘째는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마귀가 죄의 선동자로 개입했음을 뜻합니다.
마귀의 타락 시점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그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도전한 교만한 영적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 타락한 천사는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그 교만을 품고, 에덴동산의 인간에게 접근하여 동일한 유혹을 던졌습니다. 즉, 인류의 타락은 영적 세계의 타락이 지상으로 전이된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2. 인류의 타락: 관계의 붕괴와 존재적 전락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사건은 단순한 불순종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 됨'을 거부하고 스스로 '입법자'가 되려 했던 반역입니다.
2.1. 죄에 대한 성경적 개념: 하마르티아(Hamartia)
성경에서 죄를 뜻하는 가장 보편적인 단어는 '과녁에서 벗어남'을 뜻하는 '하마르티아'입니다.
- 불법(Anomia): 하나님의 법을 고의적으로 어기는 행위입니다.
- 불경건(Adikia): 창조주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상태입니다.
- 허물(Paraptoma): 가야 할 길에서 이탈하여 곁길로 빠지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결국 '하나님 중심성'에서 '자기 중심성'으로의 전착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순간, 영은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3. 죄의 확산과 역사적 실재: 가인, 아벨, 그리고 셋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의 인류 역사는 죄가 어떻게 인간의 인격과 사회를 파괴하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창세기 4장과 5장의 기록은 죄의 계보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3.1. 가인의 살인: 혼적 자아의 왜곡
아담과 하와가 에덴 밖에서 처음 낳은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창 4:1-3).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은, 부모가 저지른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자녀 세대에서 '이웃을 향한 살인'으로 구체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혼(Soul)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인간에 의해 성장하고 발전하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죄는 이 발전의 방향을 '악'으로 비틀어버렸습니다. 가인의 혼은 질투와 분노라는 감정의 비대화를 겪었고, 결국 형제 살인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치달았습니다. 이는 죄가 인간의 내면 질서를 얼마나 철저히 붕괴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입니다.
3.2. 셋의 출생: 타락한 형상과 남겨진 소망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아담은 130세에 또 다른 아들 '셋'을 얻습니다(창 4:25; 5:3). 성경은 셋이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이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매우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 비극적 측면: 이제 태어나는 인간은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 아니라, 죄로 오염된 '아담의 형상(원죄)'을 입고 태어남을 뜻합니다.
- 희망적 측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셋을 통해 거룩한 계보를 이어가십니다. 셋의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는 기록은, 타락한 인간에게 여전히 하나님과 교통하고자 하는 영적 갈망이 남아있음을 시사합니다.
4. 인간 구조의 관점에서 본 타락의 결과
인간의 구조(영, 혼, 몸)는 타락으로 인해 유기적 조화를 상실했습니다.
- 영(Spirit)의 고사: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던 통로가 폐쇄되었습니다. 성령이 거하셔야 할 자리에 죄의 욕망이 들어찼으며, 인간은 영적으로 '사망'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 혼(Soul)의 변질: 지성은 진리를 거부하고, 감정은 무질서한 욕망에 휘둘리며, 의지는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사용자님의 관점대로 혼이 인간에 의해 발전되는 영역이라면, 타락한 인간의 혼은 죄된 환경과 본성에 따라 '자기 파괴적'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 몸(Body)의 쇠락: 죽음이 육체적 실재가 되었습니다. 흙으로 지어진 인간은 이제 필연적으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해체의 과정을 겪게 되었으며, 질병과 노화라는 고통의 멍에를 지게 되었습니다.
5. 다시 쓰는 죄론의 현대적 함의
오늘날 현대 사회는 죄를 사회적 구조의 문제나 심리학적 결핍으로만 보려 합니다. 그러나 다시 쓰는 조직신학은 죄의 근본 원인을 '창조주와의 관계 단절’에서 찾습니다.
마귀의 유혹에서 시작되어 아담의 불순종을 거쳐, 가인의 폭력과 셋의 고백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부패했다는 사실입니다. 130세의 아담이 셋을 보며 느꼈을 복잡한 감정—상실된 아벨에 대한 슬픔과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실존적 상태와 같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아담의 형상을 입었으나,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회복을 갈망하는 존재들입니다.
결론: 셋의 계보에서 그리스도의 계보로
죄는 인류를 어둠 속에 가두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셋을 통해 예배의 불씨를 살려두셨습니다. 죄의 본질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도망'이라면, 구원의 본질은 '하나님께로의 돌아감'입니다. 아담의 셋째 아들 셋으로부터 시작된 그 가느다란 소망의 줄기는 결국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영'의 처소를 다시 정결케 하고, 죄로 비대해진 '혼'의 자아를 말씀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타락의 역사를 정직하게 대면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이라는 유일한 해결책을 붙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