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타락과 그 유산: 원죄와 자범죄를 이해하기
우리가 왜 동시에 고귀하면서도 추악할 수 있는지 설명하려면 ‘죄’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가 겪게 된 영적 변화를 단순한 개인적 실수로 보지 않습니다. 영적 변화란 영에 의해 지배를 받았던 인간이 혼의 지배를 받아 자아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전락된 것을 말합니다. 아담의 타락은 모든 후손의 존재 양식을 바꾸어 놓았고, 오늘은 흔히 ‘원죄’라 부르는 두 축, ‘죄책의 전가와 부패성의 전달’과 그에 대한 쟁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죄책의 전가 (Imputation of Guilt)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아담의 죄가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까요? 신학은 이를 ‘죄책의 전가’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언약적 머리로 세우셨다는 관점입니다. 마치 국가의 지도자가 맺은 조약이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듯, 아담의 범죄는 그와 연합된 모든 후손에게 법적 책임을 가져옵니다. 바로 아담의 인류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하며, 이런 관점을 뒷받침합니다. 우리가 직접 열매를 먹지는 않았더라도, 아담 안에서 이미 법적·영적 상태가 규정된 채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2) 부패성의 전달 (Transmission of Corruption): 오염된 본성
죄책이 법적인 문제라면, 부패성의 전달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를 말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 본성은 근본적으로 오염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성향을 물려받았습니다. 이것을 전적 부패(total depravity)라고도 합니다. 핵심은 사람이 죄짓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점입니다.
이 부패는 인간 존재의 여러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 지성: 진리를 깨닫는 능력이 흐려짐
- 감정: 욕망이 질서 없이 지배함
- 의지: 선을 향하는 능력이 약화되고 악으로 기울기 쉬움
영혼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그 출발점 자체가 자기중심성이라는 기반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3) 원죄를 부정하는 사상들: 인간 가능성을 강조하는 흐름들
기독교 역사에서는 원죄와 전적 부패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려는 주장들이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4세기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가 아담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중립적 상태로 태어나 스스로 선을 선택할 수 있고, 은혜에 의존하지 않아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낙관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은혜의 절대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비판받고 배척되었습니다.
-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 인간의 타락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구원의 출발에 있어 인간의 자유의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즉, 하나님이 손을 내밀 때 인간도 먼저 손을 잡을 능력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 소치누스주의와 자유주의 신학: 계몽주의 이후 일부 현대 신학 흐름은 원죄를 문자적 진술이 아닌 비유적·사회적 문제로 해석합니다. 죄를 개인 본성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구조나 도덕적 미성숙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인간이 반복적으로 악을 행하는 근본 원인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4) 자범죄(Actual Sin): 본성에서 맺힌 열매
원죄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뿌리’라면, 자범죄는 그 뿌리에서 돋아난 ‘열매’입니다. 자범죄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구체적 범죄—생각이나 감정, 말과 행동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자범죄의 특징을 살펴 보겠습니다.
- 다양성: 마음속의 미움·탐욕 같은 생각에서부터 살인·절도 같은 외적인 행위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 책임성: 자범죄는 원죄적 성향의 결과이지만, 각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책임과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 죄의 등급성: 성경은 모든 죄가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 보지만, 죄의 영향력이나 형벌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음을 시사합니다(예: 고의적 죄와 우발적 죄의 차이).
성경의 첫 자범죄 사례로 에덴을 떠난 뒤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부패한 본성이 구체적 살인의 행위로 드러난 첫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셋의 후예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일은, 비록 원죄 아래 있었지만 자범죄의 지배를 이기려는 초기 신앙의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결론: 현실의 직시가 주는 은혜의 소망
죄책의 전가와 부패성의 전달을 인정하는 일은 인간을 혐오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현실을 정직하게 진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스스로 속에서 선을 완전하게 이루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야 비로소 외부로부터 오는 구원의 소식 '은혜의 필요성'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유죄와 부패의 경로에 놓였다면,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른 계보가 시작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의 전가(Imputation of Righteousness)와 본성의 새로워짐(중생, Regeneration)을 통해 우리가 새롭게 속하게 됩니다. 셋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소망을 찾았듯, 신약 시대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힘입어 새로운 사람, 거듭난 사람으로 살아 가야할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