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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몸 삼분설에 기초한 인간 이해

by Grace1 2026. 1. 28.

영·혼·몸 삼분설에 기초한 인간 이해

 

사람은 일반적으로 ‘영혼과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분설로 이해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영과 혼과 몸으로 이루어졌다는 삼분설적 관점이 더 큰 도움을 준다고 본다. 따라서 본 글은 영·혼·몸 삼분설에 기초하여 인간과 구원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인간의 구조에 관한 이론 두가지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이 말씀은 인간 존재를 단순히 영혼과 육체로만 보지 않고, 영과 혼과 몸이라는 세 요소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영과 혼의 구분이 주는 실제적 유익

영과 혼을 구분해 두면, 믿는 이들의 영적 생명이 어디에서 역사하는지, 그리고 영적인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분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대로 이 구분이 없을 경우, 성경을 읽는 동안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서 끊임없이 혼란을 겪게 된다.

이것은 영적인 것인가, 아니면 나의 생각인가?  이 느낌과 깨달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내 안에서 나온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신앙생활 속에서 매우 실제적인 문제이며, 영과 혼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성경 이해는 더욱 어려워진다.

영적 지식과 성령의 가르침

영적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영적 생명과 깊이 연결된 영역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믿는 이가 겸손하게 성령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믿는 이가 진리를 알고자 간절히 원한다면, 비록 그가 아직 그 진리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성령께서는 그로 하여금 세상 가운데서 영과 혼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경계를 갖게 하신다. 성령의 가르침은 지식의 많고 적음에 제한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 이전에 주어지는 체험

영과 혼의 구분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더라도, 믿는 이는 영과 혼이 분리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체험은 성경 지식이 많지 않은 초심자에게도 종종 일어난다.

물론 지식과 체험이 함께하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실제 신앙의 여정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영과 혼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체험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다음과 같이 분별해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의 역사인가,
아니면 나의 생각이 섞인 혼의 작용인가?

이러한 분별이 가능해질 때, 만일 그 체험이 혼적인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믿는 이는 그것을 빠르게 경계하고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의 비유적 표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분별 능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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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브리서 4:12)

이 구절에 등장하는 혼과 영, 관절과 골수, 마음의 생각과 뜻이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물질과 비물질을 해부학적으로 구분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는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 부분은 워치만니 이론과 다른 나의 정리이다.)

관절과 골수는 몸의 가장 깊고 분리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눈에 보이는 행위 이전에 자리한 깊은 동기와 근원을 상징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해부하여 아무것도 숨겨진 것이 없도록 드러낸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를 두고 비물질적 부분은 영과 혼, 물질적 부분은 마음의 생각과 뜻으로부터 나온 관절과 골수라는 워치만니 한글 번역서는 중국어 원서를 번역하는 과정의 오류 아닌가 생각한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중국어의 특성 때문일수도 있다.


제사장의 해부와 말씀의 역사

구약의 제사장은 희생 제물을 칼로 완전히 해부하여, 그 속에 숨겨진 것이 없도록 드러냈다. 이와 같이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분께 나아온 사람을 완전히 드러내신다.

그 과정에서 영에 속한 것, 혼에 속한 것, 몸에 속한 것이 모두 분별되고, 어느 것도 숨겨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표면적으로 다루지 않고,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찔러 쪼개신다.

번역이 주는 혼란과 그 한계

사람을 영과 혼과 몸으로 이해하면 성경은 훨씬 명확해진다. 그러나 실제 성경 번역에서는 혼란이 발생한다. 어떤 구절에서는 영이 ‘영혼’으로 번역되고, 또 어떤 곳에서는 혼 역시 ‘영혼’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중국어에는 영과 영혼을 구분하는 단어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어 성경을 거쳐 번역된 한국어 성경 역시 이러한 한계 속에서 영과 혼을 혼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영의 상태를 말할 때 고린도전서 2장 15절, 3장 1절, 갈라디아서 6장 1절 등에서 ‘신령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반면 혼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고린도전서 2장 14절의 원문은 ‘혼적인’임에도 불구하고 ‘육에 속한’으로 번역되었다. 야고보서 3장 15절에서도 원문은 ‘혼적인’이지만 ‘정욕적인’으로 번역되었고, 유다서 19절 역시 ‘혼에 속한’이라는 표현이 ‘육에 속한’으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번역은 번역자의 의도와 판단에 따른 것이며, 그 결과 성경을 읽는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

맺으며

이러한 이유로 영과 혼을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데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본 글은 신학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쟁되어 온 이분설과 삼분설의 우열을 가리려는 목적이 아니다. 다만 성경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관점으로서 영·혼·몸의 구분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