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려고 하면 미칠 것이요, 부정하려고 하면 지옥 갈 것이다." 신학자들의 말입니다. 설명을 하면 할수록 헷갈리게 되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3개의 각기 다른 모양의 컵에 각각 물이 담겨 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있지만 본질은 모두 물입니다. 이러한 예 조차도 이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 컵에 담긴 물이 동시에, 영원히, 각각 존재하면서도 완벽히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을 덧붙여야 합니다.
삼위일체론은 성경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교리로,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자 가장 깊은 신비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유한한 이해로는 온전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바른 신앙을 세우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기본 사항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 정의와 기초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한 분의 본질을 가지시면서도 동시에 세 위격으로 영원히 존재하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세 위격은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며, ‘일체’는 이 세 분이 본질상 한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삼위일체의 핵심 명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유일신). 세 위격은 서로 구별된다(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령도 구별된 인격이다). 각 위격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다(세 분 모두 권능과 영광에 있어 동등하다).
2. 본질과 위격 — 용어의 의미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은 ‘본질(essence)’과 ‘위격(person)’입니다.
본질(오우시아): ‘하나님됨’의 근본 바탕으로, 신성·영원성·전지전능 같은 속성을 공유하는 하나의 신적 본체를 말합니다.
위격(히포스타시스): 동일한 본질을 나누지만 서로 인격적으로 구별되는 존재 방식입니다.
초대 교부들은 ‘상호내주(perichoresis)’라는 개념을 통해 이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안에 거하시며 완전한 사랑과 교제를 이루신다는 뜻으로, 마치 서로 어울려 춤추듯 하나가 되는 모습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3. 구원 사역 속의 삼위일체 — 경륜적 관점
구원 역사 가운데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조화를 이루십니다. 이를 ‘경륜적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성부: 구원의 계획자 — 창세 이전부터 구원의 뜻을 세우시고 택하심을 계획하십니다. 성자: 구원의 성취자 — 인간이 되시어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성령: 구원의 적용자 — 완성된 구원을 신자들에게 적용하시고 내주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4. 피해야 할 오해와 비유의 한계
삼위일체를 인간적 비유로 단순화하려다 보면 심한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정죄된 몇 가지 잘못된 주장들을 보면:
- 양태론(Modalism): 하나님이 한 분인데 시대나 상황에 따라 성부·성자·성령이라는 ‘모드’를 바꿔 나타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가정에서는 아버지로, 직장에서는 상사로, 교회에서는 집사로 행동하는 비유는 세 위격이 동시에 소통하는 성경적 장면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 삼신론(Tritheism): 성부·성자·성령을 각각 독립된 세 신으로 보는 태도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배치됩니다.
- 종속론(Subordinationism): 성자나 성령이 성부보다 본질적·능력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입니다. 정통 신학은 세 위격이 동일한 영광과 권능을 지니신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어떤 비유도 삼위일체의 모든 측면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므로 비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5. 삼위일체 교리가 주는 실제적 유익
삼위일체는 단순한 신조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 사랑의 근원: 하나님은 창조 이전부터 삼위 간의 사랑 가운데 존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외부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분의 본성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 공동체의 모델: 삼위일체의 연합은 교회가 지향해야 할 관계의 본보기입니다.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는 삶을 가르칩니다.
- 예배의 방향성: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자의 이름을 통하여 성부께 나아갑니다. 기도와 예배가 삼위일체적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 실천에 실질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결론: 신비 앞에서의 겸손한 경배
삼위일체는 인간 이성으로 전부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한계 앞에서 겸손히 경배할 신비입니다. 한 신학자의 농담처럼 “설명하려 들면 미치고, 부정하려 들면 위험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교리는 깊고도 무게 있는 신앙의 주제입니다. 이해를 넓히되, 결국은 신비 앞에 머무르며 예배로 응답하는 것이 바른 태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