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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영성 10] 거듭남과 현재의 살에서 거듭남으로 사는 법

by Grace1 2026. 2. 22.

거듭남에 관한 성경 구절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가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영의 영역에서 거듭남을 말씀하셨고, 니고데모는 혼의 영역에서 그의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려 하였습니다. 당연 옛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요”, 예수님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1. 영적 사망의 실체: 하나님과의 단절

거듭나기 전 모든 사람의 상태는 ‘영적 사망’으로 요약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영의 소멸이 아니라, 영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잃고 그분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뜻합니다. 사망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영은 본래의 통치권을 상실하고 혼(마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과 3절이 말하듯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는 곧 육체와 혼의 욕망대로 행하는 모습입니다. 즉,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고 겉사람의 욕망에 굴복하는 것이 곧 영적 죽음이며, 이러한 죽은 영은 거듭남을 통해서만 회복됩니다(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강조하신 바).

 

2. 거듭남의 본질: 하나님의 생명의 임재

거듭남은 단순한 도덕적 변화나 의지적 결단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생명(zoe)이 실제로 인간의 영 안에 나누어지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영의 영역에 속한 문제로서, 혼이나 몸의 수양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혼—지성, 감정, 의지—만으로는 하나님과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오직 영이 영과 교통할 때 하나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이 말하는 바와 같이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혼을 위해 속죄하시고 육신의 옛 원칙을 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 연합하여 사망이 없는 부활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새 생명의 출발점은 바로 우리의 영입니다.

 

3. 혼적 수양과 거듭남의 구분

감정적 고조나 의지적 결단을 거듭남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성경은 혼의 기능과 영의 사건을 분명히 구별합니다.

혼의 기능에는 죄를 슬퍼하고 회개하며 결심하는 마음, 종교적 체험이나 감정적 느낌, 이성적 이해와 지적 동의 등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거듭남의 본질은 아닙니다. 거듭남은 혼이나 몸의 변화가 아니라, 영의 중심에서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시는 사건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영의 깊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영으로만 영을 알” 수 있고(고전 2:9-12), 오직 영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요 4:23-24, 빌 3:3), 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계 1:10). 거듭남은 이러한 영적 소통의 회복입니다.

 

4. 거듭난 영의 삶: 지속적 연합

거듭난 후의 삶은 영이 하나님과 끊임없이 살아있는 연합을 유지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거듭난 영은 하나님과 깊이 결합되어 있어야 하며, 혼의 정욕이나 이상을 따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영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멈추고 혼의 욕망에 끌린다면, 다시금 영적 사망의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영의 우위성이 지켜질 때에만 인간은 하나님의 도구로서 올바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결론: 현실에서 거듭난 영으로 사는 법

1. 지식적 이해가 아닌 '영적 직관'에 의지하기

니고데모는 "어떻게 사람이 늙으면 다시 날 수 있느냐"며 혼의 논리로 질문했습니다(요 3:4). 거듭난 삶은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내면의 영이 주는 '세밀한 평안'과 '직관'을 따라 결정하는 것입니다.

 

2. '바람'과 같은 성령의 즉각적인 순종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요 3:8). 거듭난 자의 삶은 고착화된 계획(혼의 설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성령이 영 안에서 즉각적인 감동을 주실 때, 이유를 묻지 않고 바람처럼 유연하게 반응하는 것이 영의 상태로 사는 방식입니다.

 

3. '자아의 증명'이 아닌 '그리스도의 나타남'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거듭난 삶의 핵심은 자아(혼생명)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영이신 그리스도가 표현되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려는 욕망이 올라올 때, 그것을 십자가에 넘기고 내 안의 주님이 나타나시도록 공간을 내어드립니다.

 

4. 감정적 요동 속에서 '영의 안식' 선택하기

거듭나기 전에는 감정(혼)이 상하면 온 존재가 흔들립니다. 하지만 영으로 사는 자는 감정이 요동칠 때에도, 가장 깊은 속사람(영)은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의도적으로 평강의 처소로 돌아가는 훈련을 합니다.

 

5. 도덕적 수양보다 '생명의 공급'에 집중하기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의지(혼)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3장 15절 말씀처럼 주님을 앙망(Looking)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영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신성한 생명이 자연스럽게 육신의 정욕을 이기게 하는 '생명의 법'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6. '하늘의 것'을 말하는 대화의 습관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요 3:31). 거듭난 상태의 삶은 대화의 주제가 바뀝니다. 비방, 염려, 세상적인 자랑(땅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영적인 실재(하늘의 것)를 말하며 주변에 생명을 분배합니다.

 

7. '광야의 놋뱀'처럼 자신을 낮추는 태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주님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내놓으셨습니다. 거듭난 자는 갈등 상황에서 내 권리를 주장(혼의 요구)하기보다, 먼저 죽어지고 낮아짐으로써 그 상황에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게 하는 '십자가의 원칙'을 적용합니다.

 

8. 인간적 '정(情)'을 넘어선 '영적 사랑'

혼에 속한 사랑은 편애하고 조건적입니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요 3:16)처럼, 내 감정에 맞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내 안의 영에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사랑(Agape)으로 그를 대하며 기도로 품습니다.

 

9. '빛'으로 나아가는 투명한 삶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요 3:21). 자아(혼)는 자신의 허물을 숨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상태로 사는 방식은 자신의 약함과 실수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노출하고, 빛 가운데서 용서와 씻음을 경험하며 늘 투명한 영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10. 종교적 '행위'가 아닌 '존재'의 예배

예배를 혼적 만족(좋은 음악, 지적 충족)을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영이 하나님의 영과 접촉하는 것에 목표를 둡니다. 일상의 단순한 업무 중에도 "주님, 지금 제 영이 주님과 하나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영적인 연결 상태를 유지하는 '생활 예배'를 실천합니다